[K-CLASSIC] “정신 차려보니 끝났더라” 임동혁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리뷰
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연주를 마친 후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는 임동혁 |
누가 쳐도 황홀한 곡이지만, 임동혁이라면 차원의 결마저 달라진다.
임동혁은 ‘거장의 표현’을 가진 피아니스트다. 해석과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그의 ‘표현’은 선만으로 그린 소묘부터 다르다. 단색의 선뿐인데 색채감이 상상되는 연주다. 더운 물 속에서 찻잎이 풀어지듯 서서히 색깔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, 관객은 ‘저 세상’으로 가버린다.
6월 9일 임동혁은 부천필 상임지휘자 장윤성이 이끄는 칼리오페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을 연주했다.
이 작품이 가진 우주적 음의 출렁임 속에서 임동혁은 단단하게 키를 잡고 거대한 배를 완벽하게 조타했다.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임동혁의 강음은 오케스트라를 찢으며 솟구쳤고, 유리알을 굴리듯 섬세한 약음은 콘서트홀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갔다.
열 손가락이 빚어낸 마법에 걸려 환상을 헤매다 겨우 정신을 차려보니, 연주를 끝낸 임동혁이 관객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었다.
꽤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임동혁은 두 곡이나 앙코르를 선사했다. 스크리아빈 에튀드 Op.8 No.12와 바흐의 코르토 아리오소.
칼리오페심포니도 꽤 매력적인 사운드를 들려주었다. 놀랍게도 이날 연주가 첫 공식연주였다고 한다.
임동혁과의 라흐마니노프에서 살짝 삐끗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2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에서는 사운드가 확 살아났다. 특히 몽글몽글한 목관이 돋보였다. 간혹 ‘오버 플레이’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금관도 포효해야할 부분에서 확실하게 맹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.
앙코르 곡 ‘차이코프스키 폴로네즈’가 연주되며 이날 콘서트에 마침표가 ‘툭’하고 찍혔다.
70% 기대하고 갔다가 120%의 횡재를 한 기분.
즐겁고, 건강한 연주회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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